달빛과 바람 그리고 그리움 - 신정일
원풍(송나라 신종의 연호) 6년 10월 보름날 밤에 막 옷을 벗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밝은 달빛이 방안에 비치어 벌떡 일어났으나, 생각해보니 함께 노닐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承天寺로 가서 張懷民을 찾았더니, 희민도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뜨락을 거니는데, 뜨락은 마치 호수와 같아서 물속의 수초가 서로 엇 갈려 있는 것이었다. 대개 그것은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가 달빛에 서로 엇갈려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인들 달이 없으며, 어느 곳인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으련만, 다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로운 정취가 있는 사람이 드문 것일 뿐이다.
<소문공충집>에 실려 있는데 그와 비슷한 글이 일연(釋一然)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의‘포산이성(苞山二聖)’이란 내용이다.
“신라에 관기(觀機)와 도성(道成),
‘신라에 관기와 도성이라는 두 선사가 살고 있었는데 어디 사람인지는 모른다.
포산이라고도 하고 비슬산이라고도 부르는 산맥의 남쪽 모롱이에 관기는 암자를 지어놓고 살고, 북쪽의 굴 속에서 도성은 살고 있었는데, 서로 떨어지기 십 리쯤 되는 거리였다. …
만약 도성이 관기를 만나려면 산중의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파닥거리며 휘어지는 때를 택했으니, 그 나무들의 모양을 보고 관기는 도성을 마중 나갔으며, 그 반대로 관기가 도성을 만나려면 산 중의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보다 북쪽으로 굽으며 파닥거릴 때를 택했으니, 그 나무들의 모양을 보고 도성은 또 관기를 마중 나갔더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들은 바람을 타고 나무들이 휘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자연과 합일된 삶을 살았던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옛사람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을 것이다.
‘서로 찾아 달을 밟고 운천(雲泉)을 희롱하니 두 늙은이의 풍류 몇백 년이 되었는가? 구렁에 가득한 연기와 안개 옛 나무에 남아 있어 구부렸다 일어섰다 한 그림자 지금도 서로 맞는 듯하네.’
그래, 어느 곳인들 달이 안 뜨고 어느 곳인들 바람 불지 않으랴, 그리고 어디나 사람들은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 저마다 외롭고 문득 누군가가 그립다.
살다가 보면 어느 날 문득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는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도 있고,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정해년 오월 스무사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