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 - 고운기(1961~)
격포라 찾아왔네 십년 만이든가
소래사 단풍 곱기도 했는데
철없던 계집애들 여관집 밥 먹고
차 한 잔 마신다고 몰려갔던 다방
사람 드문 바닷가 거기 정담다방
나이 든 여자 하나 하품만 하고 있었지
십년 세월 깜박했네 어느새든가
소래사 단풍 아직 철 이른데
어디였는지 정담다방 찾을 길 없고
정답던 얘기만 허공중에 떴겠구나
콩국수 말아 먹는 여자 하나
입에 든 것 삼키지도 않고
“없어졌제라, 칠 년도 넘그만
그 동안 한번도 안 왔다요……”
서둘러 자리 뜨는 뒤통수만 가려웠다네.
벌교생인 고운기의 이 ‘격포’ 시를 읽다가 눈시울 붉다.
그 정담다방이 나와 다를 게 무언가. 세월은 가고 이 시만 남다.
일본 도쿄 모 대학에 한 일년 강의하러 간 시인은 소식이 없다.
이러지 말고 우리 소래사나 한번 가세. 가서 그 다방 주변에서 술 한잔 취해 가을 유원지의 건달이 되세. 시 하나 믿고 붙잡고 여기까지 왔지만 그것도 쓸쓸하긴 마찬가지.
이 시가 좋네.
<고형렬·시인>
라고 시인은 말했지만 ...
격포에는 '황금민박.이라는 바닷가 점포 겸 민박집이 있었다네.
격포보다는 채석강이라 더 잘 알려진 바닷가 방파제 위....
깊은 가을 허리쯤에 어김없이 찾곤 했던 그 집을
시인보다 더 게으르게 한 삼십년이든가 하는 후 찾았는데 정담다방은 없어졌을지 몰라도
황금민박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네.
여름보다 한결 더 거칠어진 파도소리를 듣노라면
분출할 수 없었던 젊은 날의 가슴 속 모든 응어리들이 어느 순간 흩어져버리는
그 알싸함에 계절병처럼 찾곤 했던 채석강 바닷가를 오늘 시인은 일깨워 주네.
이번 가을 한허리쯤에서 다시 또 찾아보고 싶은 '황금민박'
※시인이 말한 소래사는 지금의 來蘇寺의 옛이름이고 정담다방인가 하는 배경은 그래서 격포가 아닌 곰소쯤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는 半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