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여행

모자라고 넘치는 것 -신정일

半步 2007. 10. 1. 18:32

세상을 살다가 보면 너무 모자라서 사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지만 너무 넘치는 것이 화근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만남이나 사랑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양쪽의 그 경계가 애매한 것이라서 자칫 愚를 범하고 마는 일이 종종 있다.

월사 이정구가 지은 <월사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이석형의 집이 성균관 서쪽에 있어 냇물과 숲이 깊숙하고 그윽하다.

망건 바람으로 명아주지팡이를 짚고 휘파람 불며 노래하기도 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붙잡고 술을 마시니 마치 신선과 같았다.

띠 풀로 이엉을 한 정자 몇 칸을 동산 가운데에 짓고 이를 ‘戒溢亭’이라고 하였다.

이석형은 연못을 파고서 물이 가득차면 열어놓고 줄면 막아서 항상 물이 넘치지도, 줄지도 않게 조절하였다.
이석형이 물이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은 <계일정기>를 지었는데 그 기문은 다음과 같다.

“물이 평온하면 몸이 고요하고, 몸이 고요하면 성품이 맑고, 성품이 맑으면 온갖 물건이 와서 비친다.

이것을 마음에 비기면 喜. 怒. 哀. 樂이 아직 발동하지 아니하여 한 곳으로 기울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천하의 이치가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이것은 천하의 근본인 것이다.

흐린 물결이 흐려지는 것은 사람에 빠져서 점점 얽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물이 맑고 흐린 것은 잘 보지만 차고 넘치는 것에는 소홀하게 보아 넘기기 일쑤이다.

마음을 밝게 하여 本體의 밝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능히 못한다. 조금 삼가지 않으면 교만과 넘침이 절로 이르니 곧 사람마다 반드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나의 정자 이름을 ‘계일’이라고 한 것이다.“

넘치고 모자라는 것이 어찌 연못 뿐이랴, 사람의 관계도 그와 같고, 사람의 욕심도 그와 같아서 항상 모자라고 넘치는 것들이 서로를 갈라놓기도 하고 소원해지게도 하고 급기야 혼자만의 독방(?)을 선물하기도 해서 평생 쌓아올린 그 자신의 업적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신과 악마가 싸우고 있다. 그 전쟁터야말로 사람의 마음이다.”고 말하는데,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는 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정해년 시월 초하루

 

 

어제는 말씀 드렸듯이 설악산에 다녀 왔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

양희은의 노래가 생각나는 한계령에서 새벽 4시부터 산에 올라

대청봉을 거쳐 용의 등뼈라는 공룡능선, 마등령까지가 백두대간이지만

다시 마등령에서 비선대를 거쳐 설악동까지 한참을 더 땀을 쏟아야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13시간 반이라는데 언제나 그렇듯 제일 후미에 서면서도

예정보다 한시간을 단축한 ...

성급한 마음에 설악산까지 마중나간 단풍은 그러나 아주 드물게 보이고

간혹 멀리서 보이는 단풍은 마치 루비같은 느낌이랄까?


다음 달에는 특별 산행으로 향로봉에 간다고 하네요.

아직은 군사분계선에 속해 있어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긴 하지만

백두산까지 가는 남한에서 가장 북쪽의 백두대간길이기에

벌써부터 무척 맘이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