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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도 갈 길을 알지 못하고

半步 2007. 4. 27. 10:50

문화사학자 신정일 ( 대동여지도를 토대로 지난 25년간 남한의 8개 강과 영남대로, 삼남대로를 비롯하여 12,000km를 직접 걸어서 작성한 역사기행서「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전3권)」의 저자) 선생님의 글을 옮겨 적습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만이 어찌 이별이겠습니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있는 것도 이별은 이별일진대, 이별의 날들이 더하고 더할수록 그리움은 무성히 자라나는 수풀처럼 우거지다 못해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은 세상에서 자꾸 자꾸 희미해져만 가고 기다림에 목메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소식은 나라 곳곳의 지명들에나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다릴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 집 아이가 상공의 소식을 전해 왔는데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지금 또 어떠한 명이 내려졌는가요?

멀든 가깝든 간에 모두 적막한 이별이니, 옛날 사람이 이른바 “꿈속에서도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연연한 情 달랠 수 있으리오.” 라는 말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 한 말 같습니다.

마침 느낀 바가 있어서 삼가 송별의 말씀으로 드려 봅니다.“

 

<象村先生集 제 35권>에 실린 申欽이 五峯 李好閔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생시의 일도 아니고  ‘꿈속에서도 갈 길을 알지 못한다.’ 

그런지도 모릅니다. 잠 못 이루는 밤, 내내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긴 밤에 나를 찾아오는 것은 아직도 못 다한 일들, 못 다 쓴 글들이 마치 가위눌림밖에 없습니다.

 

이런 밤에 못 내 그리운 누군가가 찾아와 밤새워 담소를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밤이 다하는 시간에 해본 쓸데없는 생각일 뿐입니다.

정해년 사월 스무엿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