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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와 함께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이탈리아 근대 오페라의 완성자 주세페 베르디. 오늘부터 2주간, 베르디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절망의 끝에서 망향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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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밀라노의 어느 추운 겨울날.
청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극심한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향 땅에서 장인이 부쳐 준 돈으로 대도시 밀라노에 올라온 지도 벌써 몇 년.
지금쯤이면 벌써 오페라 몇 편을 성공시켜 버젓한 작곡가가 되어 있어야 했건만 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시름시름 앓더니 모두 죽어버렸고, 그 와중에 아내 마르게리타 또한 뇌막염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잃고 방황하던 그에게 <나부코>라는 제목의 대본 한편이 전달됩니다 -
‘하루 빨리 계약한 오페라를 써내라’는 독촉도 함께.
그는 퀭한 눈빛으로 대본집을 테이블 위로 냅다 집어던집니다.
그 바람에 스르륵 하고 펼쳐진 원고 속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가라 상념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
이 단 한 구절의 시가 베르디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었습니다. 바빌론의 압제자 나부코에게 사로잡힌 유태인들은 유프라테스 강가로 끌려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가 저무는 황혼녘에 고향땅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입을 모아 망향의 설움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 가라 상념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 아아, 잃어버린 아름다운 조국이여 그립고도 애달픈 추억이여 예언자의 황금 하프여 너는 왜 말없이 버들가지에 매달려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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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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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곡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이 오페라 <나부코 Nabucco>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오페라 극장을 가득 채웠던 작품들은 모두 달콤한 멜로드라마였습니다.
도니체티, 벨리니, 로시니 등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유려하고 상쾌하며, 세련된 선율의 로맨틱 오페라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베르디는 달랐습니다.
투박하지만 묵직한 주제의식이 있었고, 직설적이고 남성적인 터프함은 ‘너무 야들거리기만 한다’는 벨칸토 오페라들과는 달리 관객들의 가슴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당시 북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롬바르디아 땅은 오스트리아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암울한 정치현실 속에서 만난 베르디의 강렬하고 남성적인 사극 오페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을 질렀습니다. 쓰고 또 쓴다, 갤리선 시대 |
<나부코>의 대성공 이후 베르디는 일약 주목받는 작곡가가 됩니다.
그의 박력있고 애국적인 오페라는 관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제작자 입장에서도 작곡료가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작품성도 좋은 그의 오페라는 선호 1순위 였습니다.
이때부터 베르디는 수많은 극장과 계약하면서 단기간에 엄청난 숫자의 오페라를 쏟아내게 됩니다.
스스로 ‘갤리선 시대(노예선 시대)’라 일컫는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분초를 다퉈가며 오페라를 쓰고 또 씁니다.
어떤 작품은 참 훌륭하지만, 또 어떤 작품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에 쫓기며 오페라를 계속해서 만들다보니 차츰 경험이 쌓이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는 가운데 오페라의 깊이를 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 시절 탄생한 최고의 작품 중 하나가 <맥베스 Macbeth>입니다.
당시 베르디는 밀라노를 떠나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과 같이 일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당대의 탁월한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와 만납니다.
(우리 입장에서 상상하기 쉽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에서 밀라노의 롬바르디아 말과 베네토 지방의 베네치아 말은 상당히 다른 느낌의 언어입니다.
피아베는 베네치아 태생의 1급 작가. 그의 놀라운 필력과 아름다운 싯구가 베르디의 예술혼을 강렬히 자극합니다.
게다가 베르디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던 셰익스피어 원작의 오페라이니 더욱 그러했겠지요.
베르디는 여기 <맥베스>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주역가수들을 모아놓고는 연일 웅변을 토합니다.
“이 오페라, 예쁘게 부르려고 하지마라. 목소리로 ‘노래’하지 말고 ‘연기’해라.”라고.
어리둥절해하는 가수들을 붙잡아놓고는 한 장면에 100번이 넘는 리허설을 거듭할 정도로 몰입합니다.
그 엄청난 노고 끝에 드디어 기적 같은 명작이 탄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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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중 맥더프의 아리아. 맥베스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맥더프가 슬픔에 젖어 복수를 맹세하며 부르는 아리아 ‘A la paterna mano'. 테너 디미트리 피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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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토바 공작은 진짜 바람둥이였나? 갤리선 시대의 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1851년.
이때부터 3년간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베르디 ‘초인기 3종 세트(?)’가 탄생합니다.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가 그것입니다. <리골레토 Rigoletto>는 이탈리아 만토바가 배경입니다.
원래는 빅토르 위고 원작의 희곡으로 호색한이자 타락한 프랑스 왕의 엽색행각을 고발하는 내용이었으나, 오스트리아 당국이 제동을 겁니다.
왕을 비판하는 내용이니 공화주의자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검열 당국의 압력에 못이겨 배경을 멀쩡한 만토바로 바꿉니다.
만토바는 이탈리아 중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유서깊은 역사 도시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곤차가 후작 가문이 다스려 왔으니 사실 바람둥이 공작이니 뭐니 하는 스토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오히려 이 오페라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고, 오페라 속 가상의 인물인 곱추 리골레토의 집(Casa di Rigoletto)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만토바 시민들은 베르디 선생께 지금이라도 큰 절 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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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골레토> ‘여자의 마음’,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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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만토바 공작은 희대의 플레이보이인데, 그를 옆에서 교활하게 보필하고 있는 것이 곱추이자 궁정광대인 리골레토입니다.
그는 젊은 공작의 호색적인 성격을 부추겨 귀족들의 부인이나 딸이 농락당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숨겨두고 곱게 기르던 자신의 딸 질다마저 공작에게 유혹당해 겁탈당하자 분노 끝에 자객을 시켜 공작을 청부살해하려 합니다.
줄거리는 처절한 비극이지만, 음악은 유려하고 아리아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특히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은 한번만 들어도 귀에 바로 달라붙을 지경이지요.
베르디도 이를 알았는지 리허설 단계부터 보안에 철저히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사전 음원유출‘을 철저히 차단시켰다고 해야 할까요.
과연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에서 첫 공연이 끝난 후 이 오페라는 바로 그 다음 날 입소문을 타고 온 베네치아 시내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대저택의 귀족도, 대운하를 오가는 곤돌라의 뱃사공도 모두 ’여자의 마음‘을 흥얼거렸다고 하는군요. |
(<운명의 힘> 서곡,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에프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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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년 뒤에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집시노파의 복수극과 형제간의 운명적인 다툼을 다룬 처절한 비극 <일 트로바토레>가 탄생하게 됩니다.
곧이어, 베네치아에서는 저 유명한 <라 트라비아타>가 초연되지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페라인 <라 트라비아타>.
공연 횟수도 단연 세계 제1위입니다.
그런데 이 오페라, 베르디의 개인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요?
<라 트라비아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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