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 음식

한국 술은 이렇게 담근다-4

半步 2008. 2. 11. 16:28

* 누룩과 막걸리

    옛날 사람들은 술을 만드는 데에 “육재”라고 하여 여섯 가지의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로 쌀을 고를 때에는 벼가 팰 때부터 익은 벼를 한 번에 골라 쌀을 만들고, 둘째로 누룩은 알맞은 시기 곧 여름에 만든 것을 골라 뜨게 하고, 셋째로 쌀과 술을 섞어서 술을 만들 때에는 깨끗하게 다루어야 하고, 넷째로 좋은 샘물을 골라야 하고, 다섯째로 좋은 그릇을 사용해야 하고, 여섯째로 고루 익도록 온도를 잘 맞추어 두어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발효의 원동기 구실을 하는 누룩의 좋고 나쁨은 매우 중요하다. 누룩을 맨처음 만든 것은 춘추 전국 시대로 알려져있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가진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킨 것이다. 누룩곰팡이는 그 빛깔에 따라 황국균, 흑국균, 홍국균 따위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막걸리나 약주에 쓰이는 것은 주로 황국균이다. 먼저 밀을 갈아 가루를 체로 쳐서 골라낸 뒤에 거친 밀기울을 물에 반죽하여 쳇바퀴 안에 넣고 힘껏 밟는다.

    고려말에 강릉 태수로 있던 조 석간이라는 사람은 성가실 만큼 손님이 많이 찾아와서, 하인들에게 누룩을 슬슬 밟아서 술맛을 나쁘게 하라고 명령했다. 하인들이 그의 말대로 했더니 과연 술맛이 엷고 새콤해서 술맛이 형편없게 되었고 따라서 손님도 줄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누룩이 술을 만드는데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가를 잘 말해 준다.

    누룩을 한방에서는 “신곡”이라고 한다. 누룩은 술을 만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소화 효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 소화제의 구실도 했던 것이다.

    누룩은 밀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곡식으로도 만들어 왔다. 그리고 밀로 만든 누룩에다 쌀을 섞어 한 번 쪄내어 거기에 다시 약초를 넣어 맛을 독하게 하는 것도 있다.

    생곡을 만들 때는 생누룩 백 근에 녹두 두되, 살구씨 열두 냥을 섞어 거기에 여뀌 대가지를 잘라 달인 물을 끼얹고 상자에 넣어 단단하게 밟는다. 그것을 꺼내어 짚으로 싸서 달아 매어 둔다. 낮에는 짚을 벗기어 말리고 밤에는 그대로 두어 이슬을 맞히는데 이레 동안을 계속하면 좋은 누룩이 만들어진다.


* 막걸리

    가장 소박한 우리의 술인 막걸리는 고려 때에는 “이화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막걸리를 빚는 누룩을 배꽃이 필 때에 만든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누룩은 아무때나 만들게 되었으므로 이화주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 술을 대표해 온 막걸리는 본디 고두밥(지에밥)에다 누룩을 섞어서 빚은 술을 오지 그릇 위에 놓고 우물 “정”자 모양의 체로 막 걸러 뿌옇고 텁텁하게 만든 술이다. 농부들은 이 술을 식량의 대용으로 삼아 왔다. 양조된 술을 그대로 마셨다는 점에서 막걸리는 가장 초보적인 술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막걸리는 우리나라 술 가운데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떫은 맛이 잘 어울리고 알맞게 감칠맛과 .청량감이 있어야 좋은 막걸리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막걸리의 청량감은 일하고 난 뒤의 목마름을 멎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막걸리의 발효 시간을 너무 오래 끌게 되면 알콜은 많이 생기지만 술맛이 떨어진다. 술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청량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막걸리의 청량감은 발효 미숙에서 발효 후 탄산가스가 생겨남으로써 나오는 것으로 혀와 목을 알맞게 자극한다.

    좋은 막걸리는 유백색을 잘 유지해야 한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는 “침강도”와 “혼탁도”의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한다고 표현한다. 이와 같은 성질은 쌀을 원료로 했을 때에 나타나는 특색이다. 막걸리의 재료는 쌀보다는 찹쌀이 더욱 좋은데 밀가루나 녹말을 원료로 한 경우에는 뿌연 유백색이 가라앉고 만다. 그래서 막걸리를 잔에 따라 놓고 좀 지나면 윗물은 맑아지고 밑에는 앙금이 생겨서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마시는 진풍경이 등장하게 되었다. 막걸리를 쌀이 아닌 원료로 만들 때에는 막걸리만이 가지고 있는 감칠맛과 청량감, 또 은은하면서도 훈훈한 향내를 내기가 어렵다.

    막걸리를 영양가가 높은 술이라고 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막걸리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므로 열량이 높다. 막걸리 백 씨씨에 칠팔십 칼로리의 열량이 나온다. “마시는 빵”이라는 맥주보다 열량이 더 높은 셈이다. 또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서 단백질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데 1,2퍼센트쯤의 단백질과 0.5퍼센트에서 1.0퍼센트쯤의 녹말이 들어 있다. 막걸리 속의 아미노산과 적당한 양의 알콜은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 주어 몸속에 고여 있는 피로 물질을 없애 주는 구실을 한다. 바쁜 일손을 멈추고 한 사발의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은 풍류로서만이 아니라 영양학적인 면에서나 건강면에서 보아도 적지 않은 뜻을 갖는다고 하겠다. 막걸리가 우리나라 전래 농주로서 얼추 식량의 구실을 해 온 객관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막걸리에는 시금 털털한 맛이 있어서 살균 효과가 조금은 있을 듯한데 지방에 따라서는 괴질이 유행할 때에 막걸리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황병국

뿌리깊은나무/ 1978년 1월호 별책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