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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친절한 디토씨의 문화여행 노트] 프라하의 봄을 노래하다 - 게으름에 보름치를 연달아 퍼 나른다

半步 2013. 4. 27. 22:53


체코의 수도 프라하처럼 ‘봄’(spring)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요.

‘동유럽의 파리’, ‘백탑의 도시’라 불리며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이 도시는 봄이 되면 한층 더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1968년.

이 땅에서는 소련의 공산독재에 대항하는 거대한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흔히들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고 부르지요.

 

지금에서야 엄혹한 공산독재나 그에 대항한 장엄한 자유주의 투쟁이나 모두 철지난 겨울 추위처럼 크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인데, 아마도 그것은 우리 시대의 프라하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프라하의 봄’이란 자유, 저항, 지식인의 선언문 같은 것보다는 오히려 매년 5월마다 열리는 프라하 봄 페스티벌 (prague spring festival)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습니다.

 

이런 역사의 무심함이야말로 사실은 지난 그 시절의 선구자들이 꿈꿨을 평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라하의 봄’ 당시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소련군 탱크)

 

프라하 봄 페스티벌의 개막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스메타나 홀에서 연주되는 ‘나의 조국’이지요.

여섯 조각으로 이뤄진 이 교향시 중에서도 우리는 두 번째 곡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블타바(Vltava). 프라하의 한 중간을 관통해 흐르는 젖줄과도 같은 강입니다.

한강에 비하면 개울 수준으로 보이는 별로 크지도 않은 강이지만, 프라하 시민들은 이 강변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철재다리 대신 좁고 오래된 돌다리만을 걸어 놓았습니다.

 

사실 하루 이틀 훌쩍 보고 떠나는 여행객 입장에서야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바짝 조여 맨 넥타이처럼 조금은 불편하고 답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감수해주는 게 프라하의, 보헤미아의 문화적 긍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메타나 <나의 조국> 중 ‘블타바’ Part 1, 2009 프라하 봄 페스티벌 오프닝 공연)
(스메타나 <나의 조국> 중 ‘블타바’ Part 2, 2009 프라하 봄 페스티벌 오프닝 공연)


스메타나의 뒤를 이은 드보르작은 좀 더 애절한 봄을 노래합니다.

그것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 것이겠지요.

외국 생활을 오래했던 그에게 저 멀리 고향의 봄을 생각하며 써내려간 아름다운 선율은 지금도 모든 이들의 망향가(望鄕歌)가 됩니다.

(드보르작 <슬라브무곡> Op 72. 중 No 2., 바이올린 이차크 펄만, 첼로 요요 마)
(드보르작 <피아노 3중주 ‘둠키’> 2악장, 보자르 트리오)

프라하에서의 첫 날은 조금 정신이 없었습니다.

체코어를 몰라 길거리를 헤매기 일수였고, 가는 곳마다 넘치는 사람들에 치여 무얼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할지도 몰랐지요.

 

그러다 도망치듯 찾아간 곳이 드보르작 기념관입니다.

블타바 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이 건물은 아르바이트생 청년 한 명이 지키고 있는 무척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가방을 맡기는 라커룸을 찾지 못해 허둥거렸습니다.

청년은 영어를 못하고, 저는 체코어를 전혀 못하니 둘 다 허둥대다가 결국은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한바탕 소동을 펼친 끝에...가방은 그냥 들고 올라가도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2층 드보르작의 작업실에서는 작은 오디오로 유모레스크를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웬일인지 프라하 여행이 술술 풀려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다 드보르작 덕분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보르작 <유모레스크>, 폴 다니엘 지휘, BBC콘서트 오케스트라)

출처 : 28도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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